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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황학정

송덕기는 임호로부터 택견을 집중적으로 전수받은 지 4년 되던 1913년에 집안의 권유1) 에서 21세의 나이로 국궁을 배우기 시작하였다.2) 

 

黃鶴停에서 宋德基는 시수꾼은 못되었지만 편사나 궁술대회에 말썽이 생기면 현장에 달려 나가 수습을 하는 해결사였다고 한다. 1920~1930년대에 걸쳐 일제하에서 각종 궁술대회에 宋德基의 입상(入賞) 기록은 신문지상에 보도된 것이 없지만 黃鶴停의 편사원으로는 항상 낄 수 있었던 중(中)급의 사원이었다. 1975년 그가 83세 때에 黃鶴停 제126회 삭회에서 1등을 한 기록이 마지막 입상기록이다.…(중략)…宋德基는 자신의 택견에 대해서 사회적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기능을 후세에 전수하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70년대에 와서 택견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이 나오게 되자 宋德基는 黃鶴停주변 특히 감투바위(帽岩) 부근에서 택견기능을 전수하기 시작하였다.3) 

 

송덕기는 택견을 익히고 그 기능을 통해 황학정에 생기는 문제에 대해 나서서 해결했던 것으로 보이며 활 쏘는 것을 평생 취미 생활로 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송덕기가 황학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해결사처럼 활동하였던 것은 그가 가진 능력으로 요즘의 경호․경비원의 역할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는데, 그 바탕은 택견으로 단련된 무예․격투 능력과 자신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황학정은 송덕기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송덕기가 임호로부터 택견을 배운 곳은 황학정 뒤 인왕산 자락의 감투바위 일대였고 훗날 송덕기가 제자들을 양성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기간 중에는 송덕기가 다양한 활동을 하였던 시기이기도 한데 임호로부터 택견 전수, 조선 보병대 입대, 불교청년회 축구단 창설을 함께 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송덕기가 황학정 활동에 전념한 시기는 1922년 임호의 사망과 황학정이 현재 위치로 이전된 시기와 불교청년회 축구단이 조선축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며 해체된 시기로 1922년부터 1925년으로 판단할 수 있다.

 

 

각주

  1. 이용복, 1990 『(韓國武藝) 택견』, 96쪽과 도기현, 2003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49쪽에서는 송덕기가 택견을 그만두게 된 것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아버지와 형님들의 만류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黃鶴亭100년사편찬위원회 편, 2001『(近代弓道의 宗家)黃鶴亭 百年史』, 305~306쪽에서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택견수련과 경기가 철저히 금지되고 부친이 송덕기가 싸움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황학정을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2. 黃鶴亭100년사편찬위원회 편, 2001『(近代弓道의 宗家)黃鶴亭 百年史』, 350쪽 기록 및 자료에서 宋德基가 1913년 6월에 시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黃鶴亭100년사편찬위원회 편, 2001『(近代弓道의 宗家)黃鶴亭 百年史』, 3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