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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한택견무도연구원

1958년 경찰무도대회에서 권법 시범으로 왔던 박철희와 인연이 생긴 송덕기는 당시 박철희가 근무 중이던 경무대의 상무관(尙武館)1)  으로 자주 방문을 하였는데 송덕기가 살던 사직동과 가까워 매일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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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는 <사진 3>에 보이는 것처럼 상무관에서 박철희, 김병수, 정화 등과 인연을 만들게 된다.2)   송덕기는 경무대를 방문하여 박철희가 경호원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무예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송 선생님은 가령 거기 오셔서. 그니까 말하자면 날 그냥 도와주시는 걸로 해서 도와주시는 분이지.. 직접 많이 활동은 안하시고 그냥 말로만 얘기로 그냥 그렇게 하시고 어...…(중략)…(몸으로) 배운건 별로 없어요.. 나는 인제 (젊지만) 경무대의 말하자면 무도, 무예사범이니까 내가 저걸하고 그러니까... 이 양반이 (하는 것을)보존할려고 하고 살리는 걸, 아시고 그러니까 그전에는 나는 택견에 대해서 찾을라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어요.…(중략)…그 어른이 날 대할 적 에는 난 그때는 그러니까... 뭐라고 그럴까. 그때는 경무대 사범이면은 가령 예를 들면 무도로선 좀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런 것이 있어서. 하튼, 좋아하셨지 나를.. 3) 

 

경무대에 온 송덕기는 직접적인 교습(敎習)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박철희가 경호원들을 지도하였을 때 기술의 원리나 사용방법 등 무예 전반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960년 제17회 로마 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 소개를 하기 위해 한국문화소개 부분으로 택견이 선택되어 박철희와 함께 경복궁에서 택견 사진 촬영을 하게 되었다. 당시 경복궁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었지만, 박철희의 경무대 사범 경력과 문교부의 지원으로 가능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리고 그때 인저... 그때 그것은 에... 그것도 한번 찾아봐요. 뭐냐믄, 문교부는 그때 체육과 과장은 최선생이지. 그러니까 체전 나온 사람. 그리고 과장이... 과장 밑에 있는 양반이 나한테 와서 로마 오림삑(Olympic)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데 없다 이거야, 소개할께. 그래서 그... 경무대에서 찍은거져.. 그 경회루에서 찍은 거예요.4) 

 

여기 송덕기한게 말고도 또 있다고 송덕기씨한게. 이 사진은 박철희씨고, 이것도 그때 내가 못 간 날에 찍은 사진이고. 이 사진도 인제 먼저 말 했듯이. 이게... 공보부에서 찍었는데 로마 올림픽에 전시할라구 찍었다가 쓰지를 않았어. 쓰질 않고 공보부에서 깔고 뭉게는 바람에 이제 내가 들어가서 거 블랙벨트 기자니 뭐니 이렇게 하는데.. 잠깐 어디 간 동안에 집어가지고 나온거야.5)  

 

올림픽 전시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박철희와는 달리 김병수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공보부(公報部)6)  에서 촬영을 하였는데 실제 올림픽에 전시되지 않았다고 말을 한다. 지금은 사진만 남아 확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후 박철희는 송덕기가 보유한 택견의 기예를 보존하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한택견무도연구원’ 설립을 추진(推進)한다. 박철희는 경무대 재직기간인 1959년부터 1960년까지 ‘대한택견무도연구원’ 설립을 추진하였는데 문교부 관계자에게 사단법인 인가(認可)받기 위해 송덕기와 함께 문교부를 찾았다고 한다.

 

내가 대한택견무도연구원이라고 만들었어요. 사단법인 대한택견무도연구원. 만들어서 문교부에 하교국장을 만나서. 내가 그때 경무대에 있을 땐데, 그 사람들이 안 만나요? 만나지. 그래, 내가 이 택견은 대한민국 고유의 말이야 무술이다 말이야. 이걸 사단법인 허가를 허십시오. 내가 갔어요. 송 선생님 모시고 갔어. 그래서 선생님이 “내가 대한민국의 택견은 박 선생밖에 안 알으킵니다.” 으허허허(크게 웃음). 문교부에 가서 그랬어요. 내가 그렇게 노력을 해서 이걸 졸속 시켜야겠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나는 그 전에 택견을 알았어요. 파사권법에 멘션을 했어요.…(중략)…택견무도연구원이란거 그 사단법인을 할라구 그래. 그때. 그 선생하고 나하고의 그거에요. 뭐, 거의 매일 만나는 거지. 그니까 내가 거기 매일 가니까... 댁이 여기야. 저.. 이.... 어디지? 저쪽에? 인왕산 밑에 거기 경무대에 가깝거든 또 경무대에 오시는 거 좋아하셔.(웃음)7) 

 

송덕기는 문교부에서 박철희에게만 택견을 가르쳤다 하는데, 실기적인 측면으로는 직접 가르치기보다 무예로서 기술의 원리(原理)같은 부분을 주로 이야기로 알려주거나 무예 관련 지식을 공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1960년 4․19혁명이 발발(勃發)하고 복잡한 시국으로 접어들면서 송덕기, 박철희가 사단법인 인가(認可)를 받으려던 대한택견무도연구원의 계획이 진행이 되지 않았다.

 

고 다음에도 혁명이 나고 난 다음에도 내 친구가 거기 판단관을 했어 중위에요. “내가, 임마! 하던 거 안됐는데 니가 좀 만들어. 그래서 택견무도연구원이란거 그 사단법인을 할라구 그래.”…(중략)…그러니까 판단관. 그러니까 말하자면 보좌관이지. 보좌관이지 장관. 그 해야 된다고 하다가 안 되니까.…(중략)…그 사람 이제 육군사관학교 있다가 그리(장관의 보좌관, 판단관) 왔지. 음... 대신 내가 친구니까 친구를 불러 갔지. 거기서 근무했으니까. 생도대. 내 그 양반한테 부탁을 했지. 이걸 내가 시작을 하다가, 아- 혁명 이 나서 안됐으니까.. 자네가 좀 해달라고 말이야. 음... 좀 해달라고 그러니까. 알겠다고. 그랬더니 혁명 중에 바뻤던 모양이야. (4․19)혁명 진행 그 할 적에.…(중략)…그 양반 같은 양반은 뭐라고 그럴까... 사실은 보배인데.. 내가 이제 은연 중에 그런 것이 느껴져서 아마... 돈을 들여서 사단법인을 만들라고 한 거에요. 그때 그런 생각을 한 거에요. 그래서 나라에서 이거를 갖다가... 내가 그때는 그런 기회가 됐었죠.…(중략)… 아~ 11월 8일서부터 운동을 나가는데 이거를 반대를 했대니까. 그걸 뒤에서 한 사람이 태권도인(人)이에요.8) 

 

그렇게 추진되던 대한택견무도연구원은 4․19 등 여러 복잡한 시대 정황과 담당자의 택견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해 계속 추진되지 못하였고 태권도인(人)으로부터 방해를 받았다고 한다. 이 당시는 또한 대한태수도협회(大韓跆手道協會)9)   통합의 본격화 과정 중이어서 이 같은 활동에 대한 견제(牽制)를 받은 것으로 판단 할 수 있다. 이후 박철희의 태권도 미국 개척활동으로 인해 대한택견무도연구원 설립 추진은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았다.

 

각주

  1. 창덕궁에 있는 경무대 경찰서 소속으로 운영하던 무도관(武道館)이다.

  2. 홈페이지(www.kimsookarate.com/gallery-old-days/58_blueHouse/blueHouse.htm), 2012년 12월 3일 검색. 사진의 가운데가 송덕기, 그 왼편이 박철희, 오른쪽 김병수, 하단의 맨 오른쪽이 태권도 前세계 태권도 연맹 집행위원 정화이다. 나머지 흰띠를 매고 있는 사람들은 경무대 소속 경호원들이다.

  3. 박철희, 2012년 10월 5일, 서울특별시 종로2가.

  4. 박철희, 2011년 7월 5일, 인천광역시 남구.

  5. 김병수, 2011년 8월 5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6. 박철희는 문화체육부라고 말을 하였으나 당시로는 ‘공보부’였다. 1968년 7월 23일 문화 공보부로 1993년 3월 5일 문화부로 1993년 3월 6일 문화부와 체육부의 통합으로 문화체육부가 되었다. 1998년 2월 27일 문화관광부로 되었다가 2008년 2월 29일부터 현재까지 문화체육관광부로 불린다.

  7. 박철희, 2012년 6월 24일, 서울특별시 종로2가.

  8. 박철희, 2012년 11월 5일, 서울특별시 종로2가.

  9. 「대한태수도협회 창립 과정과 뒷이야기」『태권도신문』2008년 3월 3일. 대한태권도협회의 전신으로 1961년 9월 22일 대한태수도협회라는 명칭으로 통합되었고 강기석, 2001 『태권도 半世紀』, 81~87쪽에서는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