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1893년 1월 19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송태희(宋泰熙)의 막내1) 로 태어난 송덕기는 유년시절 당시 나라가 어수선했지만2) , 아버지가 국가 하급관리, 어머니는 잡화가게3) 를 해서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자라며 큰형에게 택견을 배울 수 있었다. 청년시절부터 스승 임호에게 택견을 전수받으며 기량이 높아짐에 따라 마을의 택견꾼들과 함께 사직골을 대표하여 유각골, 옥동, 애오개 등의 택견꾼들과 겨뤄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송덕기의 체구는 작지만 솟구치며 쓰는 발길질과 정확하고 다양한 기술을 잘 사용하여 구경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4)
송덕기는 17세에 결혼을 하고 곧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5) 그 당시 군(軍)은 지금과 달리 출퇴근하면 되기 때문에 계속 택견을 하며 택견판에 참가했다. 송덕기는 운동신경이 좋아서 군에서 사병들에게 근대식 체조로 ‘뜀틀’과 ‘철봉’을 가르쳤다고 한다.
정경화(2002)는 송덕기의 군(軍) 제대는 23세이고6) 이용복(1990)은 27세에 입대하여 3년간이라 설명하고 있다.7) 도기현(2003)은 17세에 결혼을 하고 곧 군에 입대라고 기술하고 있다.8)
위의 <사진 1>을 보면 송덕기의 묘소에 1882년이라고 기록이 되어 택견인(人)들 사이 송덕기 생애에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한풀의 김정윤은 송덕기에게 택견 정리를 하며 녹취를 하였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입대를) 스물세 살, 스물네 살 때...(했어요). 출퇴근했어요. (근무는) 한 삼년동안 했어요.…(중략)…아, 이.. 저.. 저.. 이태왕. 그. 저.. 저.. 시방. 어, 황제! 이왕. 그 양반이 어른이 되도록 창덕궁에 있었거든요. 창덕궁에.. 네. 창덕궁에 있을 때 거기 들어가서 본(시범) 들어가죠. 아침이면 들어가고 저녁이면 나오고. 하루 한 번씩 그러고, 그러고 거기 에 있다가 얼굴 본게 몇 번 되요.9)
송덕기 증언의 일부를 살펴보면 기존에 제시된 자료10) 들과는 달리 송덕기는 24세에 군대에 입대하여 창덕궁에 있는 이왕(李王)11) 를 보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왕(李王), 이태왕(李太王)을 혼용하며 황제라고 지칭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언급한 이왕은 창덕궁에 기거하는 순종(純宗)이라 볼 수 있다. 조선보병대의 활동이 일제 강점기에 황실친위부대12) 에서 나누어 운영된 조선기병대와 조선보병대가 1913년을 기점으로 1915년부터 1931년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송덕기는 1916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 보병대에서 근무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왕(李王)13) 이 창덕궁에 있다는 점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송덕기의 출생은 1893년으로 확인 할 수 있으며 송덕기가 조선 보병대에 복무한 나이는 24세부터 26세까지로 확인 할 수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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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 2003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47쪽에서는 기존에 문화재 지정 시 송덕기의 가족관계 7남 7녀 중 막내가 아니라 2남 3녀의 막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용복, 1990 『(韓國武藝) 택견』, 95쪽에는 7남 7녀라고 기록하고 있고 정경화, 2002 『택견원론』 84쪽에도 7남 7녀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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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협회 기록과 저서의 기록 상 송덕기의 출생 당시는 조선말기인데, 갑오경장(甲午更張)을 중심으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갑오경장은 1894년(고종 31년)부터 189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추진되었는데 일본이 배후에 있었다고 하나, 근대화의 기점이 될 만큼 중요한 제도개혁이 있던 시기였다. 실학부터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 등 매우 혼란한 시기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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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 2003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송덕기』, 47쪽에서는 송덕기 어머니 김氏는 필운동 삼거리에서 잡화가게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용복, 1990 『(韓國武藝) 택견』, 95쪽에서는 송덕기의 아버지 송태희씨가 잡화가게를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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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판에서 활동 당시 송덕기의 정확한 나이는 각 협회나 저서마다 다르지만 도기현, 2003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48쪽은 16세로 이용복, 1990 『(韓國武藝) 택견』, 95쪽은 10대 후반으로 정경화, 2002 『택견원론』, 84쪽에서는 20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자료로는 이 당시를 설명하는 송덕기의 인터뷰를 들 수 있다. 송덕기는 이보형, 1984 「선조의 수련세계(구술자: 송덕기)」『KBS문화마당』에게 “내가 재빠르고 발길질을 잘해서 어른들이 끼어 넣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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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가 군에 입대를 하였을 때, 부대에 대해서도 설명이 다르다. 이용복, 1990 『(韓國武藝) 택견』 96쪽에는 조선보병대, 대한태권도협회, 1971 「살아있는 태껸인 송덕기 옹」『태권도』 제3호에서는 조선포병대라 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7KOR_A1893_1_0005950 2012년 4월 15일 검색에는 조선포병대라 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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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 2002 『택견원론』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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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복, 1990 『(韓國武藝) 택견』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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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 2003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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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터, 2012 「1986년 송덕기 구술자료 일부」『위대태견연수과정』 홈페이지(http://www.barktur.com/shop/shopdetail.html?branduid=409934) 2012년 11월 10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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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복, 1990 『(韓國武藝) 택견』, 96쪽, 정경화, 2002 『택견원론』, 84쪽, 도기현, 2003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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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李王)은 일제 강점기에 사용되던 직위로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대한제국의 황족을 일본의 황족이자 왕으로 대우하면서 붙인 칭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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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조선 군대 해산 이후 왕실 근위대로 유지되며 조선왕실근위대, 조선근위대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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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창덕궁에 기거한 왕은 순종(純宗)이다. 순종은 창덕궁에서 1926년에 생을 마감하였다.